유머러스한 영성(靈性)

김태원(문화비평가)

오늘의 한국문화의 형성에 영향을 미쳐온 정신적 기조로 샤머니즘은 그 역사적 기원을 잘 알 수 없는 것으로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과 연관하여 무당을 매개로 어떤 신령한 힘에 의존해서 현세의 어려움을 치유하거나 해결해가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샤머니즘은 호랑이 등으로 표상되는 애니멀리즘과 결합된 컬러풀한 무화(巫畵)와 함께 다양한 무구(巫具)를 통해 접신(接神)과 축귀(逐鬼)에 힘을 쏟는 것이다.

현재 50대에 있는 한국의 중견 도예가 장미경의 작품을 보게 되면 흥미롭게도 한국문화의 그 같은 정신적 기조가 흙과 결합된 오랜 전통을 가진 도예(陶藝)라는 축소된 예술형태와 조형물 속에 되살아나고 있음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장미경의 도예는 경복궁 안에 있는 근정전 월대위에 놓여진 12지신의 석상과 한국의 단청 그리고 죽은 이를 위한 상여(喪輿) 등에 즐겨 장식되던 ‘꼭두’라는 한국 고유의 인형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무겁고 강렬한 원색적 색채감을 표출하면서 호랑이·닭 등의 동물적 형상을 이용해서 어떤 신령스러움의 기운을 즐겨 담고 있어 보인다. 따라서 우리가 그녀의 도예물을 보는 순간, 마치 무당의 무화나 이름 없는 많은 수의 민간인들이 그린 이른바 민화(民畵)를 처음 볼 때처럼 알 수 없는 어떤 신화적 세계에 곧장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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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그것은 동화적 세계라 해도 좋고, 어떤 상징성을 띤 민속적인 우화적 세계라 해도 좋다. 그 속에는 지상에서 가장 사나운 표정을 가졌다고 하는 한국산(시베리아산) 호랑이가 집 개(犬)의 크기로 우스꽝스럽게 줄어들고 있는가 하면, 그 표정은 때론 바다표범과 같이 검게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종종 그 등 위로 화려하게 깃털 세운 닭이 올라서 있는가 하면, 명랑하고 밝은 표정의 동자(童子)도 함께 있다. 여기서 닭은 하늘과 교신(交信)하고, 호랑이는 악귀를 쫓으며, 동자상은 우리를 어딘지 아름다운 세계로 인도할 것 같다. 그 결과, 그녀의 도예는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 일종의 조소물로서 강한 인간적 친근미를 드러낸다.

특히 이 ‘인간적 친근성’은 그녀의 도예가 갖고 있는 유머러스한 형상미와 함께 어떤 밝은 기운이 그 주위로 번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달리 말해 그녀의 도예가 놓일 수 있는 자리는 그것이 본래 축귀의 의미를 갖는 상징물이라 해도 음습한 지하나 사신(死身)의 곁 보다는, 생명의 에너지가 발산되고 있는 양지바른 곳이 더 적당해 보인다고 하겠다. 그래서 그녀의 도예전은 종종 ‘길상전(吉像展)’이라 칭해지면서, 도예 속에 영성을 담되 어둠과 죽음의 이미지를 물리치는 데 힘을 쏟고 있는 것 같다. 즉 인간화된 영물(靈物) 속에 밝은 생명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이 그녀의 도예세계라 하겠다.